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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요약

여덟단어 책요약

여덟단어 책요약



강판권 씨는 자기 안의 점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밖에 찍어놓았던 기준점을 모두 안으로 돌려 자신이 제일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고 점을 다시 찍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의 점들을 연결해 하나의 별을 만들어낸 겁니다. 강판권 씨는 지금 계명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만약 이 사람이 서울 강남 한복판에 있는 현대고등학교를 나오고 서울대를 졸업한 사람이라면 농촌에 주목할 수 있었을까요? 나무를 잘 알 수 있었을까요? 현대고, 서울대를 나와서 가기에는 힘든 길이죠. 그러나 그들이 가기 어려운 길을 강판권 씨는 가고 있어요. 자기가 가지고 있는 걸 봤기 때문이고 자기 길을 무시하지 않은 겁니다.

자신의 길을 무시하지 않는 것. 바로 이게 인생입니다. 각기 다른 자신의 인생이 있어요. 그러니 기회도 다르겠죠. 그러니까 아모르 파티, 자기 인생을 사랑해야 하는 겁니다. 인생에 정석과 같은 교과서는 없습니다. 열심히 살다 보면 인생에 어떤 점들이 뿌려질 것이고, 의미 없어 보이던 그 점들이 어느 순간 연결돼서 별이 되는 거예요. 정해진 빛을 따르려 하지 마세요. 우리에겐 오직 각자의 점과 각자의 별이 있을 뿐입니다.

Everything changes but Nothing changes. 모든 것은 변하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전 세계에 70억의,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어요. 완전히 달라요. 쌍둥이조차도 다릅니다. 그런데 본질적으로 ‘사람’은 다 똑같아요.

저는 사람을 봅니다. 모든 것은 변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그것입니다. 사람들의 웃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본질의 시대고 ‘변하지 않는’ 그것을 잡아야 해요.

본질을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생각과 행동이 달라집니다. 수용을 배우는 목적이 ‘수영을 잘 하는 것’이었다면 저는 일찌감치 나가떨어졌을 겁니다. 하지만 수영을 배우는 본질을 저는 ‘땀 흘리는 것’으로 정했어요. 저는 수영 선수가 될 것도 아니고 빨리 상급반으로 올라가고 싶은 생각도 없었어요. 그러니 실력이 빨리 늘지 않는 것은 크게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이렇듯 본질이 무엇이냐에 따라 흔들림이 달라집니다.

강의와 프레젠테이션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심을 모두 극복했어요. 어떻게 극복했을까요? 광고계에서 먹고 사는 이상 프레젠테이션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니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했죠. ‘나는 도대체 왜 이렇게 떨리는 걸까?’ 하고 제 자신을 돌아봤더니 너무 잘하려고 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남들한테 멋지게 모이고 싶은 마음이 컷던 거죠. 하지만 잘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할 말을 하는 것’ 이었어요. 열 명의 스태프들이 오랜 시간 동안 피와 땀을 흘려 생각해낸 아이디어를 잘 정리해서 정확하게 전달하는 게 내 역할이었습니다. 프레젠테이션의 본질은 내가 멋있어야 하는 게 아니라 잘 전달하는 것에 있더라는 거죠.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본질을 발견하려는 노력과 본질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포기할 줄 아는 용기, 그리고 자기를 믿는 고집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뿐인 ‘나’라는 자아가 곧게 설 수 있으니까요.

지금까지 살아남아 고전이 된 모든 것들을 우리는 무서워해야 해요. 하지만 되려 무시하기 일쑤죠. 우리들, 특히 젊은 청춘들에게 고전은 사실 지루해요. 매일 새롭게 터져 나오는 것들에 적응하며 살기에도 바쁘기 때문이겠죠. 계속 변하는 세상의 속도에 가장 빠르게 적응하는 사람들인 만큼 고전을 뒤돌아볼 여유가 없어요. 그런데 생각해보길 바랍니다. 뭐가 더 본질적인 걸까요? 오늘 나타났다가 일주일, 한 달 후면 시들해지는 당장의 유행보다 시간이라는 시련을 이겨내고 검증된 결과물들이 훨씬 본질적이지 않을까요?

고전을 궁금해 하세요. 여기저기 도움도 받고, 책을 통해 발견해내면서 알려고 하세요. 클래식을 당신 밖에 살게 하지 마세요. 클래식은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즐길 대상입니다. 공부의 대상이 아니에요. 많이 아는 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얕게 알려고 하지 말고, 깊이 보고 들으려고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들고 있는 가방이 명품이 아니에요. 그 가방은 단지 고가품일 뿐이죠. 명품은 클래식입니다. 고가품과 명품을 헷갈리지 말고, 진정한 명품의 세계로 들어가시길 바랍니다.

내 눈앞의 것, 내 행동만 잘 본다고 해서 아이디어가 샘솟고 창의력이 솟아나지 않습니다. 때로는 주변의 모든 것들, 예를 들어 회의실에서 하는 한마디, 친구들과의 대화,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에도 주목해야 합니다. 그들의 말을 시청하지 말고 견문해야 하죠. 이게 뭐가 어려운 일이냐 싶겠지만, 어려워요. 왜냐하면 그 말들이 대단하지 않으니까요. 그냥 일상의 언어들일 뿐이에요. 그런데 이걸 견문해서 그 안에서 빛나는 무언가를 발견해야 해요.

여러분, 사과를 몇 번이나 봤어요? 백 번? 천 번? 백만 번? 여러분들은 사과를 한 번도 본 적 없어요. 사과라는 것을 정말 알고 싶어서, 관심을 갖고 이해하고 싶어서, 대화하고 싶어서 보는 것이 진짜로 보는 거예요. 오래오래 바라보면서, 사과의 그림자도 관찰하고, 이리저리 만져도 보고 뒤집어도 보고, 한 입 베어 물어도 보고, 사과의 스민 햇볕도 상상해보고. 그렇게 보는 게 진짜로 보는 거예요.

우리도 요즘 많이 봅니다. 책도 많이 읽고, 사과도 배도 감도 얼마든지 많이 볼 수 있죠. 그러나 정작 아무것도 보지 않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더 많이 보려고 할 뿐,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헬렌켈러가 이렇게 말했죠. 내가 대학총장이라면 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필수과목을 만들겠다고. ‘How to use your eyes(당신의 눈을 사용하는 법)’ 이것은 결핍된 사람의 지혜입니다. 우리가 못 보는 이유는 우리가 늘 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결핍이 결핍된 세상이니까요.

     수많은 시간을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꽃들이 햇살을 어떻게 받는지
     꽃들이 어둠을 어떻게 익히는지
     외면한 채 한 곳을 바라보며
     고작 버스나 기다렸다는 기억에 목이 멜 것이다.

시를 쓰든 말든, 광고를 하든 말든, 창의적이 되든 말든 다 떠나서 보는 건 정말 중요합니다. 제대로 볼 수 있는 게 곧 풍요니까요. 그래서 인문이라는 단어는 법학, 의학, 과학, 물리학에 다 필요한 거예요. 이런 게 있어야 행복한 상태로 살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보배롭게 봐야 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보는 힘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무것인 게 인생이더라.

살다 보면 왜 그 순간이 기억나는지 모르겠는데 기억나는 순간들이 있고, 중요했다고 생각하는 순간은 별로 중요치 않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김춘수 시인의 시「꽃」은 ‘순간’에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시에서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했어요. 순간도 마찬가지지요. 어떤 순간에 내가 의미를 부여하면 나의 삶은 의미 있는 순간의 합이 되는 것이고, 내가 순간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나의 삶은 의미 없는 순간의 합이 되는 것이에요.